첫날밤/오상순(1894-1963)
어언 밤은 깊어
화촉동방(華燭洞房)의 촛불은 꺼졌다.
허영의 의상은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그 청춘의 알몸이
깊은 어둠바다 속에서
어족(魚族)인 양 노니는데
홀연 그윽히 들리는 소리 있어.
아야……야!
태초 생명의 비밀 터지는 소리
한 생명 무궁한 생명으로 통하는 소리
열반(涅槃)의 문 열리는 소리
오오 구원의 성모 현빈(玄牝)이여!
머언 하늘의 못 성좌는
이 밤을 위하여 새로 빛날진저!
밤은 새벽을 배고
침침히 깊어간다.
-권오만, <서울을 詩로 읽는다>(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