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헌의 산악비행]
- 옥녀봉 가마봉 위로, 푸른 바다 위로, 꿈처럼 날다
가마봉 좁은 바위면에서 이륙, 30여 분 환상적 비행 만끽
-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볼 수 있다던 조나단의 ‘갈매기의 꿈’이 생각난다. 사람도 누구나 보다 높이, 보다 멀리 가고자 하는 인생의 에베레스트를 꿈꾼다. 비행이란 그 꿈의 일부를 현실로 실현시키는 일이 아닐까? 그것도 인위적인 동력의 힘이 아닌 자연의 일부를 이용한 무동력으로 하늘을 나는 새가 된다는 것은 옛적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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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녀봉 위를 신선처럼 날고 있는 산악비행팀. 저기압만 아니었다면 훨씬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었기에 다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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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바람과 나의 동물적인 원초적 본능으로 나는 비행의 자유를 만끽한다. 그것이 내가 패러글라이딩에 매혹된 이유다. 이 패러글라이딩으로 나는 우리 산하의 명산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혔고, 최근 이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한국의 수많은 명산 정수리를 패러글라이더로 날며 그 모습을 내 눈과 마음에, 그리고 카메라에 담아 산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여 드리고자 한다.
햇볕이 작렬하는 7월, 어느 산으로 비행을 갈까 고민 끝에 넓은 바다와 수평선과 기암절벽들이 산을 지키며 성을 이룬 사량섬을 선택했다. 진주 주변의 사천, 남해에 살고 있는 동호인들이 함께 비행하기로 하고 사량도로 향하는 고성 맥전포항에 집결했다.
밀레니엄 이후 비행 문화는 차량으로 산의 정상이나 능선까지 이동한 뒤 높은 고도로 보다 멀리까지 날아가는 데 주로 치중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직선거리로 100km 이상을 비행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산악비행은 좀 다르다. 산 아래에서 등산을 시작해 능선이나 봉우리에 오른 다음 이륙지점을 찾아 기체를 펼쳐놓고 비로소 하늘로 날아오른다. 이를테면 산행의 연장선 상에서 하산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활용하는 것이다. 많은 산악인들이 80~90년 초반 패러글라이딩을 시도했으나 점차적으로 동호인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소수가 됐다.
사량도는 두 개의 섬으로, 윗섬(상도)과 아랫섬(하도)로 구분된다. 상도에는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는 지리산(일명 지리망산)과 기암절벽이 깎아지른 암봉군을 이룬 옥녀봉이 있다. 우리는 대항을 출발, 섬 일주도로를 따라 금평에 도착, 식당에서 라면 한 그릇씩 비운 다음 벽에 걸린 사량도 지도를 보고 오늘 산행코스와 이륙장, 착륙장의 지형지물을 확인한 다음 옥동 마을에서 오른쪽으로 위치한 성자암 코스로 길을 잡았다.
무더위에 정상까지 글라이더 메고 엄청 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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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산과 바다를 함께 즐기며 비행중인 패러글라이더. [우]옥녀봉 중턱 바위지대에서 패러글라이더를 펼쳐놓고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 임도는 아니지만 성자암까지 차량이 통행할 수 있도록 도로를 만들고 있었다. 근래에 내린 비로 도로상태가 엉망이라 초입에 차량을 세우고 산행을 시작했다. 도로에는 많은 비로 흙들이 쓸려 내려가 주먹만한 돌들이 걸음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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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마봉 직전의 바위지대를 지나고 있는 산악비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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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암 입구에 도착하니 작은 연못에 연꽃들이 활짝 웃고 있다. 역시 도착순서는 연령에 정비례한다. 일행 중 가장 무거운 배낭을 멘 김홍기(수산중공업) 회장이 제일 뒤에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올라온다. 하치경 선수(진글라이더)와 강귀훈씨(와룡패러)는 제법 산행복장을 갖추고 있지만, 나머지는 목에 수건을 두르고 양말 안쪽으로 바지를 넣는 등 꼴불견 패션으로 산행을 한다.
솔숲이 해를 피해 오르기는 적격이지만 바람이 없고 무더운 대기는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든다. 1년 동안 계속 요가를 한 홍필표씨(진주패러팀장)는 체중이 10kg이나 줄어들어 걸음이 가볍다. 평소 산행을 즐기는 김종홍씨(한국항공)는 열심히 전진하고, 체육과 출신인 하치경 선수와 나름대로 몸짱인 장상현씨(남해패러)는 산보하는 느낌으로 산을 오르고 있다. 그러나 뒤로 정희섭 사장(남해유선방송), 박해종 사장(억조장어), 김홍기 사장(수산중공업) 세 분은 모두 몸에서 구슬땀이 솟고 있다.
능선 갈림길에 도착하니 왼쪽이 지리산, 오른쪽이 옥녀봉이란 이정표가 나타난다. 모두들 그늘 밑에서 휴식을 가졌다. 팬티만 입고 휴식하는 김종홍씨, 배가 산처럼 나온 정희섭 사장, 모두 휴식하는 몸짓이 숫제 행위예술가들이다.
본격적인 암릉산행이 시작되면서 걸음들이 느려진다. 역시나, 세 사장은 암릉을 우회하면서 바위와 나무 사이로 빠져나간다. 젊은이들은 암릉을 타고 넓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간다. 급경사 내리막 바위지대에는 작은 돌들이 너덜을 이뤄 발이 미끄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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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녀봉 절벽 옆을 횡단하여 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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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안부에는 천막을 치고 상인들이 막걸리와 맥주 등 먹을거리를 팔지만 오늘은 평일이라 천막이 로프로 꽁꽁 묶여 있다. 시원한 맥주에 대한 기대는 바람처럼 날아가고 말았다. 모두들 표정이 엉망이다.
안부 이후 큰 바위사면에는 굵은 동아줄이 양쪽으로 나뉘어 매어져 있다. 필자가 처음 이곳에 오를 때는 자연적인 바위들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지금은 바위마다 철계단과 로프들이 설치됐다. 왜 이리도 자연과 조화를 이룬 조형물들을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로프를 타고 유격훈련을 하듯 올라간다. 점차 옥녀봉에 가까울수록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이 정도의 바람이라면 능선을 타고 사량도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멋진 날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바람이 잦아들기 전에 이륙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힘을 다해 넓은 바위에 올라가니 비행에 가장 적합한 이륙장 조건을 갖춘 20평 정도의 자연암반 활공장이 나타났다. 정상의 작은 표지석에 가마봉(303m)이라 적혀 있다.
비행에 가장 적합한 바람은 시속 15km 정도지만, 이런 작은 산에서는 20km 정도는 불어야 사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해 능선비행이 가능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직접적인 해풍이라 육지면에서와 같은 열기류는 없지만 바람이 깨끗해서 안정적으로 사면비행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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